




고요한 순간 - 시간을 멈추고
각각의 모습으로 흘러가고, 또 흘러드는 모습을 바라본다.
흘러들며 오가는 생명의 흔적이나 각각의 형상으로 맺혀있는 일상들...
모양은 서로 어울리고, 색은 곁에 있어 빛을 낸다.
비어있는 공간사이로 -- 일렁이며 내려앉는다.
아버지는 마당에서 풀을 뽑고, 멀리 아이들 웃음소리...
어머니는 빨간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졸고 계신다.


기억
걷다 보면 서서히 바람에 흩어져 사라지고 잊혀 질 때가 있다.
무엇이 햇살이고, 바람이고, 나무이고, 계곡인지...
고요한 가운데 멈추어진 시간 속에서 - 무디어진 분별력으로 나뭇가지 사이를 헤엄치듯이 졸듯이 꾸벅이며 떠다니기도 한다. 그럴 때는 간혹 놀라며 날아가는 새소리에도, 발길에 부서지는 낙엽 소리에도 눈이 번쩍 뜨이면서 모든 사물이 신기하고 새롭게 보이는 것이 이제 막 눈을 뜬 아이의 보이는 것이 이렇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도 된다.
어느 해 여름 새벽부터 길을 걸었다.
조금씩 스며드는 빛이 공기 중의 수분과 섞이며 푸르스름한 새벽 향기가 되어 아직은 어둑한 수풀 위로 내려앉는다. 다리 위를 지나며 내려다본 강물은 며칠째 내린 비에 불어나 누런색으로, 어느 곳에서는 제자리를 계속 돌기도 하고, 출렁이면서 거칠게 내려간다.
계속되는 반복이 한참을 보고 있어도 지루하지가 않다.
오후 늦은 시간 작은 산길로 접어드니 차츰 검푸른 색과 연한 자줏빛이 숲속 나무사이로 섞이며 어른거리는데 조금은 서늘하게 느껴진다. 숲길 끝으로 어두운 모퉁이를 돌아서자 눈앞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저녁 빛에 물들어 있는 풍경이 보인다.
작은 언덕 위 주욱 늘어서 있는 나무들 사이로 연잎 가득한 저수지가 보이고, 저수지 너머로 붉은 지붕 파란 지붕의 시골 집들이 아담한 산자락 아래로 둘이 셋이 앉아있다.
산 뒤로는 커다란 구름이 큰 산들을 앞뒤로 감싸고, 흐릿한 그림자 같은 모습으로 천천히 지나가는데 ...
현실 같지 않은 모습이 다른 세계로 열려 있는 듯하다.해는 이미 기울고 조금씩 흐릿해져가는 형상들이, 저마다의 색들을 저녁 빛으로 물들여간다.
온전한 침묵 속에 바람이 무심히 지나간다.
언덕 위 시원하게 뻗어 오른 나무들 사이로 -
한 그루 나무는 이가 빠진 모습으로 몇 개 가지는 꺾이어지고 한두 가지만이 겨우 남아 비스듬히 뻗어 있는데 한 오십년은 되어 보이는 나무로 응장하거나 화려한 모습은 아니지만 그 모습 그대로 의젓하고 간결한 모습이 지나온 시간들의 굴곡진 이야기를 함께 담고 있는 듯 보여져서 마음을 기울여 바라보게 된다.






